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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기술이 아닌 목적 중심으로

-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인류 번영을 향한 AI 전략을 말하다 -

AI가 인류 문명의 방향을 바꾸는 대전환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세계의 시선은 여전히 더 빠른 모델, 더 강력한 반도체 같은 '기술'에 쏠려 있다. 기술이 수단이라면, 그 기술로 무엇을 이룰 것인가라는 '목적'은 누가 정하는가. 남이 닦은 길을 빠르게 쫓아 선진국까지 온 한국은 이제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오랫동안 산업과 정책 현장에서 혁신을 이끌어 온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에게 물었다.

Interview

Q1.지난 6월 ‘글로벌 인류공영 AI포럼 2026’에서 “AI시대 선진국의 조건은 기술이 아닌 인류 공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시대를 어떻게 진단하고 계신가요?

지금 인류는 AI‧디지털 대전환, 그린 대전환, 문명 대전환 세 가지 대전환을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 첫째, AI‧디지털 대전환입니다. AI 혁명이 디지털 대전환의 핵심이니 이 두 가지는 하나의 흐름이고, 기술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린 대전환입니다. 지구 환경이 심각한 상황에서 탄소중립을 비롯한 친환경 전환이 필수가 됐습니다. 셋째, 문명의 대전환입니다. 세대와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미‧중 갈등으로 세계가 양극 진영 논리로 나뉘면서 모든 문제에 지정학이 개입되는 변화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질문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입니다. AI는 그 답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인류가 함께 번영하고 행복하며 지속가능하게 사는 것, 즉 인류 공영의 목적이고 AI는 이를 이루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Q2.한국이 그 ‘목적’을 선도하려면 무엇부터 바뀌어야 할까요?

한국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로 성공한 나라입니다. 과거에는 선진국을 벤치마킹해서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이었기 때문에 '무엇을(What), 어떻게(How)'만 중요했고, '왜(Why)'라는 본질을 물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술, 즉 수단에 집착하게 됐고 덕분에 선진국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어디로 갈 것인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기술 중심’에서 ‘목적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금도 초격차 기술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방향이 맞는지 정하지 않고 격차만 따지면 빨리 잘못된 곳으로 갈수도 있습니다. AI를 두고도 독자 모델이나 GPU 같은 기술 이야기가 앞서고, AI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AI 관련 위원회도 절반은 기술 전문가로 채우되, 나머지 절반은 인문·철학·정치·사회·예술 분야가 참여해 우리가 다음 물결을 어느 방향으로 타야 할지 함께 정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을 주도하는 것을 불안해하는 태도부터 버려야 합니다. 목적을 정하는 일은 원래 선진국이 하는 일인데, 이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니 '우리가 해도 되나'가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AI의 흐름을 주도해야 합니다.

Q3.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계신데, '목적 중심'은 연구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나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비롯한 23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총괄하는 기구입니다. 연구원들이 각자 예산으로 자기 분야만 하다 보니 협력이 잘 안되어, 두 개 이상의 연구원이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융합연구'를 장려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서로 다른 기술이 뭉치는 기술 중심의 개념이었습니다.
제가 위원장을 맡으면서 이를 '목적·미션 중심'으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건강하게, 편리하게, 안전하게, 지속가능하게 살고 싶다는 인류의 바람이 곧 미션이고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탄소중립을 목적으로 삼으면 관련된 모든 기술이 들어가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삶'을 목적으로 삼으면 의료기기부터 신약까지 모든 기술이 필요해집니다. 목적이 정해지면 기술들이 그 목적을 중심으로 헤쳐모이는 것입니다. 기존의 기술 중심 R&D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목적 중심을 더하자는 것이고, 연구개발전략위원회가 어떤 기술을 할지 전략을 짠다면 융합연구위원회는 어떤 목적을 위해 할지를 찾는 역할을 합니다.

Q4.이런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피지컬 AI'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왜 지금 주목받고, 어떤 한계가 있나요?

출발점은 2025년 CES였습니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인식 AI, 생성형 AI, 에이전트 AI에 이어 다음 단계로 피지컬 AI를 제시한 뒤, 세계적 관심과 투자가 빠르게 로봇으로 이동했습니다. 이후 CES 2026, MWC·GTC, 하노버 산업박람회, 상하이 WAIC·베이징 WRC를 거치며 피지컬 AI는 더 이상 미래의 개념이 아니라 본격적인 산업 경쟁의 영역으로 들어섰습니다. 특히 현대차그룹인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생산과 고객 배치를 전제로 한 완전 전동식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처음 공개하면서, 로봇 경쟁은 개별 하드웨어 성능 경쟁을 넘어 'AI 모델·데이터·시뮬레이션·반도체·하드웨어·제어'를 아우르는 풀스택(Full-stack) 경쟁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존 로봇 자동화의 근본적 약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 이동·조작·지능이 동시에 발전하고 있다는 점, 가상공간 학습으로 AI의 '스케일링 법칙'이 로봇 산업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휴머노이드가 게임 체인저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지나친 낙관은 금물입니다.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대회에서 중국의 텐궁 울트라가 100m를 8.64초에 주파해 인간 기록을 앞섰지만, 같은 대회에서 로봇들은 물건 정리, 케이블 연결, 장애물 대응 같은 사람에게 훨씬 쉬운 작업에서 넘어지고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손'입니다. 다양한 모양과 재질의 물체를 인식해 적절한 힘으로 집고 돌리고 끼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투자수익률입니다. 로봇의 경제성은 구매 가격뿐 아니라 작업속도·성공률·가동률·고장률·유지보수·소프트웨어 통합 비용까지 포함한 전체 비용으로 판단해야 하고, 이미 수십 년 동안 최적화된 기존 산업용 로봇이 아직은 휴머노이드보다 훨씬 경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Q5.미국과 중국이 기술·자본·시장에서 압도적인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으로 경쟁해야 할까요?

명량해전에서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함대를 좁은 울돌목으로 유인해 대승을 거뒀듯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울돌목의 지혜'입니다.
한국은 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조선·기계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업과 공장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단시간에 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현장 노하우이자 고품질 데이터입니다.
우리는 이 강점을 극대화하는 네 가지 전략에 집중해야 합니다. 첫째, 범용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가공·조립·검사·물류 등 산업현장에서 투자수익률이 나오는 분야에 집중해야 합니다. 둘째, 로봇산업을 '로봇으로 제조업을 혁신하는 산업'으로 넓게 봐야 합니다. 셋째, 우리 제조현장을 세계 최고의 피지컬 AI 데이터 공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넷째, 모든 것을 국산화하려 하지 말고 미국의 AI·컴퓨팅 플랫폼, 중국의 부품 생태계, 일본·유럽의 정밀기계 기술을 과감히 활용해야 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혼자 완결하기 어려운 피지컬 AI 생태계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은 전면전을 벌이는 '1강'이 아닙니다. 누구도 우리를 배제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파트너'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현대판 울돌목 전략입니다.

Q6.마지막으로 국내 엔젤투자자와 스타트업 생태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초기 없이는 후기도 없습니다. 지금 VC들은 후기 단계 투자에 집중하고 있어 창업 초기를 받쳐 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결국 엔젤투자 생태계가 성공해야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문 엔젤투자자의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 스타트업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그간 정부 주도로 생태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펀드는 모태펀드가 절반을 대고 LP도 정부 관련 기관 비중이 큰 구조라, 민간 생태계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합니다. 언젠가는 민간 주도로 바꿔야 하고, 그 전환의 열쇠를 쥔 것이 엔젤투자자입니다. 미국은 엔젤투자 규모가 우리가 말하는 펀드보다 훨씬 큽니다. 전문 엔젤투자자를 많이 양성해 민간 생태계가 강건해지면 그때는 정부가 한 발 물러서도 됩니다. 그때까지 정부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장기간 생태계를 뒷받침해야 하고, 세제 혜택 같은 엔젤투자 관련 제도는 일몰되기보다 오히려 연장하고 확대해야 합니다.
여기에 두 방향이 더해져야 합니다. 하나는 지방 균형 발전입니다. 지방 국립대를 중심으로 엔젤투자자와 창업가가 함께하는 지역 혁신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지방대 육성도 의미가 있습니다. 개별 엔젤은 정보의 비대칭이 있으니, 지역별로 엔젤클럽을 만들고 여기서 펀드를 조성해 중앙정부가 뒷받침하는 방식도 좋습니다. 다른 하나는 글로벌입니다. 엔젤투자자들이 해외로 역할을 넓힐 수 있도록 엔젤투자 교육과 해외 엔젤 생태계와의 협력도 함께 뒷받침해야 합니다.

마무리 말씀

결국 기술을 실제 사업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스타트업이고, 그 첫걸음을 함께 걸어주는 것은 엔젤투자자입니다. 대한민국이 인류 공영이라는 목적을 세계에 제시하는 나라가 되려면, 이 최전선에 있는 창업가와 투자자들에 대한 존중과 지원이 그 무엇보다 우선돼야 합니다. AI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먼저 묻고, 그 목적을 위해 기술과 자본, 인재를 모으는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정부가 마중물을 대되 민간이 주도하는 생태계가 자리 잡을 때, 한국은 세계가 함께하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 주요 이력 ]

• 現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 現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 現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융합연구위원회 위원장
• 前 제14대 중소기업청장
• 前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 前 GE써모메트릭스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 前 GE써모메트릭스 아시아태평양총괄 사장
• 前 (주)본텍 대표이사 사장
• 前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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